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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성

[Unknown x 여주]작별

오른달 2016. 11. 2. 19:49




당연히 언노운 실명거론 있음 입니다.







<작별>






*





 날이 많이 추워졌다. 세란은 컴퓨터 앞에 앉아 의자만 팽- 돌렸다.


 "지루해."


 오늘 그가 뱉은 첫마디었다. 컴퓨터 모니터에서는 'C언어 기초'라고 적힌 타이틀에 인터넷 강의가 재생되고 있었다. 그는 짜증난다는 듯이 컴퓨터를 단숨에 꺼버렸다.


 "세란 씨- 그거 공부하고 싶으시다면서요!"

 "재미없는 걸 어떡해."


 유자차와 쿠키를 가지고 방으로 들어오던 여자는 그런 세란의 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어쉰다. 여자는 세란의 유일한 가족.... 사실 가족이라기엔 멀고 그냥 연인이라기엔 매우 가까운, 그런 사이었다.








 여자는 세란에게 삶의 이유같은 존재였다. 어느 겨울, 홀로 앉아서 담배만 태우고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세란에게 손을 내밀어준 유일한 존재였다.


 "무슨 일 있어요?"

 "........그냥 신경끄고 가."

 "제가 어떻게 그래요. 아, 잠시만요."


 여자는 웃으며 어디론가 뛰어가더니 손에 온음료 두 병을 사다와서는 세란의 옆에 앉는다.


 "........나보고 거미래."

 "네?"

 "다른 뜻은 없어. 보기에 기분 나쁜 동물로 취급받는 게 거미지. 좋은 일을 해도 말이야. 나는 그런 존재라고."

 "왜 그렇게 생각해요?"

 "..........그딴 질문 하지마. 그냥 그렇게 들었으니까 그렇구나- 하는거야."


 여자는 갸웃거리다 세란에게 온음료를 하나 내밀었다.


 "유자차에요. 날 추운 날, 이만한게 없죠. 감기 걸리면 안되니까."








 세란은 그 날을 떠올리며 웃었다.


 "왜 웃어요?"

 "그냥."


 탁자에 가져온 쿠키와 유자차를 놓는 여자를 보고 마냥 웃기만 하다가 세란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입에 입을 맞춘다.


 "응? 갑자기 또 왜요?"

 "사랑해."

 "저두요! 사랑해요, 세란 씨."


 세란은 또 금세 울상이 되어 탁자 앞에 앉았다. 그리고는 유자차를 가만히 들여다보고는 마시고 내려놓고 또 들여다보기를 반복했다.


 "으음-, 무슨 일 있어요?"

 ".....넌 날 믿어?"

 "질문 같지도 않은 질문을 또 간만에 듣네요. 당연하잖아요."


 세란은 처음에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여자와 어울렸다. 하지만 곧 자신을 사랑하는 법보다 여자를 사랑하는 법을 배운 것만 같았다. 세란은 진심으로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여자 또한 그랬다. 그저 동정으로 시작했을지 몰라도 시간이 갈수록 '사랑'으로, 진심으로 세란을 사랑하고 또 아껴줬다. 세란의 불안함이 짙어지지 않게. 하지만 세란의 불안함은 시도때도 없이 찾아오는 것 같았다. 특히 차가운 이 겨울에는 더더욱.


 "세란 씨, 설마-"

 "......이게 나잖아. 난 널 다 믿을수없는 사람인 걸."

 "세란 씨...."


 여자는 말없이 세란을 안아주고 다독여준다. 세란은 잠시 안정되는 것 같지만 더 외롭다는 생각을 한다.


 "....곧 학교갈 시간이지? 대학생도 참 피곤하겠다."

 "....네에. 미역국 끓여뒀어요. 챙겨먹구요. 오늘은 일찍 끝나니까 금방 올게요."

 "잘 다녀와."

 "네, 갔다올게요. 오늘도 사랑해요!"

 "...........응. 안녕."

 "응? 안녕!"


 여자는 가방을 챙겨들고 현관을 나선다. 어색하게 선 세란이 손을 흔들어주며 인사하자, 여자도 의아해하다가 이내 웃으며 손을 흔들어준다. 여자가 현관문을 닫고 나가는 순간부터 세란의 표정은 다시 어두워진다.


 세란은 언제나 자신을 해치는 일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아직도 여자가 없을 때는 커터칼이나 손톱으로 자신의 손목을 엉망으로 만들어놓고는 했다.


 "하아....."


 여자한테 혼날 걸 알면서도 이렇게 하지않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으니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살아있는 것 같지 않으니까. 그래서 언제나 '비자살성 자해'만 해왔다. 하지만, 오늘은 뭔가 다른 기분이었다. 세란은 부엌으로 갔다. 한 번도 손대보지 않은 부엌칼. 칼을 들고 세란은 싱긋, 웃었다.


 ".....예쁘네."


 그리고 세란은 욕실로 가서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으면서 쓰게 웃었다.


 "이제는 ...내 불안함에 네가 있지 않기를 바라. 내 어둠에 네가 갇혀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난 이것밖에 안되는 사람이야. 나는.... 이제 갈게."


 세란은 옷을 입은 채로 욕조에 몸을 밀어넣었다. 그리고는 가져온 부엌칼로 아주 세게, 아주 깊게 자신의 손목을 그어버린다. 세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아, 아프다.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아파.


 

 ".....안...녕."


 세란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여자가 집에 돌아왔을 때, 적막이 흘렀다. 겨우 욕실로 발을 들인 여자는 주저앉아 울수밖에 없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는 그, 그가 있는 욕조는 온통 붉은 빛이었다.


 "세란 씨......."


 자신을 여전히 믿지 못한다는 세란의 말, 평소와 다르게 '안녕.'이라고 인사하며 손을 흔들어주던 세란의 모습. 여자는 그게 '작별'이라는 것을, 이제서야 깨달았다. 뒤늦게 떠오른 생각에 고개를 저어대며 부정해봐도 그는 더이상, 이제는 만날수 없는 이였다.



 

 '안녕.'이라고 말하며 웃던 세란의 목소리가 울려퍼지는 것 같다.

 바람이 차다. 시린 겨울이 온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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